눈치가 빨랐다. 본능인지 장녀라는 이름 때문에 본의 아니게 얻어낸 감각인진 모르겠으나 분위기 파악하는 데는 도가 텄었다. 그래서 알고 있었다. 나재민이 날 좋아하는 것쯤은. 중학교 입학하면서부터 나재민은 점점 더 다정하게 굴었다. 예민해 보이는 시기면 항상 날 위해 내가 좋아하는 간식들을 꿰고선 주머니에 넣고 다녔고, 자켓 걸치는 걸 답답해 하는 나를 아는...
우지현의 부모님은 중매쟁이를 통해 만났다. 모두가 결혼하는 적절한 시기에 적당한 직업을 가진 서로의 프로필을 선택하여 만난 지 다섯 달 만에 식을 올렸다고 했다. 심지어 서로가 처음도 아니었다. 선자리에도 짬이 차는지 서로를 처음 봤을 땐 둘 다 이 선자리에 지극히 익숙한 표정이었다고 서술했다. 때문에 우지현은 사랑에 대한 환상을 갖고 있었다. 로미오와 줄...
우리 언니 좋아했던 내 짝사랑 오빠가 군대 갔다가 돌아왔다. 과제 때문에 날밤 새고 백수 상태로 방문 열고 나갔더니 활쩍 웃으면서 나 보고 인사해 주는 이 남자… - 간만이네, 여주 동생. 시선 숨기는 건 여전히 못하시더라고. 아직도 우리 언니 좋아하나 본데. 김여주 동생 김여준. 언니 이름은 주인공 같기도 하고 예쁜데 자기는 남자처럼 지었다고 어릴 때 엄...
달동네 사는 애들이라고 꼭 비관적이고 우울하란 법 없지. 그거 증명하겠다고 엄청 착실하게 살고 웃기도 잘 웃는데, 혼자 있을 땐 자기도 모르게 조용할 것 같음. 이제 막 열 살 된 여동생한테 스케이트 선물해 준 이동혁. 그거 하나 사 주겠다고 새벽 시장 나가서 옷감 배달만 몇 개월을 했는데, 깨발랄 여동생이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일주일 만에 고장내 갖고 오..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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너도 한 대 피울래? 아뇨, 전 안 해요. 코까지 찡그릴 정도야? 선비 납셨네. 선배는 저 왜 싫어하세요? 훅 들어오네. 근데 틀렸어. 나 너 안 싫어해. 표정 웃기네. 거짓말하는 것 같아? 야, 제노야. 칸트는 선이 개인의 만족을 위해서가 아니라 ‘선한 일이기에’ 수행하는 것이므로, 순수히 자신의 의무감에서만 선행을 해야 도덕적 가치를 지닌다고 했대. 어...
빌어먹을 김여주Written by 시민 흔적이 없었다. 남은 게 없었다. 그래도 제 이십대를 바친 사람인데 이렇게나 티끌도 없었다. 흔히들 이 정도 사귀면 서로의 욕실에 칫솔 하나쯤은 남기고 오던데. 정말 그 흔한 칫솔도 없었다. 후드티 한 장도, 양말 한 짝도, 머리카락 한 올도, 숨 한 폭도, 눈빛 한 점도 그 어떤 것도 남기지 않았다. 처음엔 실감이 ..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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